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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의 미로

    영화 '판의 미로' 간략한 소개 및 평가

    2006년 개봉한 영화로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작품입니다. 감독의 최고작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영화는 미국, 멕시코, 스페인 합작의 판타지 영화입니다. 동화적이면서도 기묘한 판타지와 파시스트 지배 하의 비극적인 전쟁상황이 잘 조화된 스토리로 1944년 내전이 끝난 시점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 소녀가 경험하는 환상적인 세계와 현실적인 세상을 잘 조화하여 어른을 위한 잔혹 동화와 같은 느낌의 독특한 영화가 되었습니다. 장르로는 판타지로 분류되지만, 판타지적인 동화를 넘어 호러에 가까운 잔혹성이 보이는 작품으로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영화입니다. 국내에서는 배급사가 가족용 판타지인 것처럼 홍보하는 바람에 가족단위 관객들에게 욕을 많이 먹었다고 전해지는 저주받은 걸작이었습니다. 2006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었을 때 약 20분간 기립박수를 받은 일화가 유명하며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도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매체에서 2006년 최고의 영화로 '판의 미로'를 선정하고 있습니다. 2010년 엠파이어지도 역대 최고의 영화 100선 중 5위에 랭크했습니다. 국내에서도 극찬을 받았으며 영화평론가 이동진은 이보다 깊고 슬픈 동화를 스크린에서 본 적이 없다는 평가와 함께 만점의 평점을 주었습니다.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고 미술상, 촬영상, 분장상을 수상하였고, 멕시코 아리엘 어워드 작품상 포함 9개 부문 수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비영어 영화상 포함 3개 부문 수상, 스페인 고야 어워드 7개 부문 수상, 전미비평가협회상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지금도 판타지 영화 부문에서 역대 최고의 영화로 손꼽히고 있는 명작의 반열에 오른 작품입니다.

     

    현실의 슬픔이 느껴지는 동화적 내레이션

    "아주 멀고 먼 옛날 어느 거짓과 고통도 없는 지하 왕국이 있었고 그곳에는 인간 세상을 동경하는 공주가 살고 있었다. 공주는 푸른 하늘과 산들바람, 그리고 따스한 햇살을 꿈꿨다. 어느 날, 공주는 시중들을 따돌리고 지상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지상으로 나오자 강렬한 햇빛에 두 눈이 멀고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지도 못한 채 추위와 질병 속에서 죽게 되었다. 그러나 공주의 아버지인 국왕은 공주의 영혼이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다. 다른 몸을 빌어서라도, 어떤 경우라도 언젠가는 돌아올 것이라고, 국왕은 죽는 날까지 공주를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끝날지라도."

     

    오프닝 내레이션이 이렇게 끝나고 이야기는 1944년의 스페인에서 시작합니다. 내전은 끝났지만 군사독재 세력에 저항하는 반군들은 산속에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인공 소녀 오필리아는 슬픈 표정으로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임신한 어머니가 입덧을 하여 차가 잠시 멈추고 그녀는 잠시 내려 주변을 보다 눈 모양이 새겨진 돌을 줍습니다. 돌기둥에 있는 조각에 돌을 끼워 넣자 대벌레를 닮은 곤충이 구멍에서 기어 나옵니다. 오필리아는 이 곤충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차를 타고 다시 떠나고 곤충은 출발한 차를 따라 날아갑니다. 그리고 영화는 잔인한 현실의 이야기와 오필리아에게 벌어지는 동화적인 이야기를 오고 가며 마지막 내레이션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게 공주는 지하 왕국으로 돌아갔고, 정의와 온화함으로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리니 온 백성이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지상에 남긴 작은 흔적들은 어느 곳을 보아야 하는지 아는 자에게만 보인다고 한다."

     

    엔딩 내레이션이 끝나고 시든 무화과나무의 가지에 꽃 하나가 피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이 처음과 끝에 나오는 내레이션에 영화의 깊은 슬픔과 비장한 아름다움이 모두 담겨 있는 것만 같습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꼭 다시 한번 동화책의 처음과 끝을 보듯이 음미해 보세요. 깊고 슬픈 이 이야기의 시작과 마지막을 천천히 여러 번 느껴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동화와 대비되어 더욱 슬픈 현실의 잔혹함

    반군을 잔인하게 진압하기로 악명 높은 비달은 회중시계를 강박적으로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는 권위적인 인물입니다. 오필리아는 그의 의붓딸이고, 그녀의 어머니인 카르멘은 비달의 자식을 임신 중입니다. 카르멘은 오필리아가 비달을 아버지라고 부르길 원하지만 오필리아는 냉정하고 잔인한 비달이 너무 무섭습니다. 그리고 친아버지가 너무도 그립습니다. 비달의 저택에 도착한 날 밤에 오필리아의 침대로 숲 속에서 본 대벌레를 닮은 곤충이 다시 오게 됩니다. 요정의 모습으로 변신한 곤충을 따라 오필리아는 저택 부근의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지하세계로 가는 미로의 유적을 발견하고 판을 만나게 됩니다. 판은 그녀를 공주님이라 부르고 그녀가 지하 세계의 모안나 공주의 환생이라고 알려주며, 아버지인 지하 세계의 왕이 아직도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판은 오필리아가 다시 지하 세계로 돌아가려면 다음 보름달이 뜨는 밤까지 세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며 책을 건네줍니다. 첫 번째 임무는 나무의 뿌리에 살며 무화과나무를 말라죽게 만드는 괴물 두꺼비에게 마법의 돌을 먹이고 뱃속에 있는 열쇠를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임무는 아이를 잡아먹는 괴물이 있는 방에 가서 칼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분필로 문을 그려서 들어갈 수 있으며 괴물 앞에 차려진 음식은 절대 먹으면 안 되는 규칙이 있는 임무였습니다. 이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오필리아는 포도를 먹게 되고 쫓아오는 괴물을 피해 간신이 빠져나오게 됩니다. 아주 유명한 장면이고, 이 영화를 보면 절대 잊지 못할 무서운 장면입니다. 요정에게 규칙을 어긴 사실을 들은 판은 오필리아에게 화를 내며 절대로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고 다른 인간들처럼 늙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집니다. 또한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판의 말대로 처방을 해놓은 것을 비달에게 들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비달은 오필리아에게 동화만 보더니 완전히 미쳤다고 소리칩니다. 둘만 남게 되자 카르멘은 오필리아에게 현실은 차가우며 동화 같은 건 없다며 처방을 해놓은 뿌리를 잡아 불에 던져 버립니다. 그 순간 카르멘은 상태가 악화되고 진통이 시작되고 아들을 출산한 후 죽게 됩니다. 비달은 오직 아들만 신경 쓰며 카르멘의 죽음에 냉담하게 행동합니다. 그 후 일련의 끔찍한 현실에서의 비극적인 사건들이 지나가고 방에 홀로 갇혀 슬픔과 외로움에 휩싸인 오필리아에게 판이 다시 나타납니다. 마지막 기회를 줄 테니 갓 태어난 아기를 미로까지 데려오라는 임무였습니다. 한편 비달의 군대와 총격전 끝에 저택으로 진입한 게릴라군은 오필리아를 구하려 하지만 이미 오필리아는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아기를 안고 비달을 피해 도망친 후였습니다. 오필리아는 판의 도움으로 비달을 따돌리고 미로에 도착하게 됩니다. 판은 지하 세계의 문을 열려면 죄 없는 사람의 순결한 피가 필요하니 두 번째 임무에서 가져온 칼로 아기를 죽여 피를 뿌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오필리아는 판에게 아기를 줄 수 없었고 뒤이어 따라온 비달에게 아기를 뺏기고 비달의 총에 쓰러지게 됩니다. 그러나 비달은 뒤쫏아온 게릴라군에게 잡혀 이기를 뺏기고 사살됩니다. 오필리아는 총에 맞은 채 죽어가고 있었고, 이때 그녀의 피가 미로의 안으로 떨어집니다. 오필리아가 눈을 뜨자 눈앞에는 휘황찬란한 왕궁이 보이고 그곳에는 공주의 아버지인 지하 왕국의 왕과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 왕비, 그리고 판과 백성들이 그녀를 보고 있습니다. 왕은 남의 피를 희생하는 대신 자신의 피를 흘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었다고 말합니다. 이와 대비되어 현실의 오필리아는 미로의 한가운데에서 죽게 되고,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어린 소녀의 죽음에 현실의 모든 이들은 깊은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오필리아의 마지막 임무와 그녀의 죽음을 보면서 아마도 관객들은 현실과 동화의 가운데에 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동화의 행복한 끝맺음과 현실의 불행한 끝맺음을 모두 깊이 느낄 수 있을 때, 마지막 내레이션의 이야기처럼 그녀가 지상에 남긴 흔적들을 우리는 모두 보게 되는 것일 것입니다. 이 깊고 슬픈 동화가 남긴 지상의 흔적들을 꼭 만나고 느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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