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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음이 청정해집니다. 도심에서 흔히 접할 수 없는 맑은 정신이 살아있는 스님의 글들이 소중하게 전해집니다. 맑은 문장의 기운이 마음에 흐르면 딱딱한 마음이 어느새 부드럽게 변합니다.
후박나무 그늘에서 배우는 무심
법정스님의 책 '텅 빈 충만'을 꺼내 음미하며 읽었습니다. 어느 날, 법정스님은 오전 한 때를 후박나무 그늘에 앉아 조촐하고 맑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나무 아래에 앉아 스님은 후박나무의 덕과 무심을 생각했습니다.
요즘 나는 오전 한때를 후박나무 그늘에 앉아 조촐하고 맑은 시간을 보내면서 나무의 덕을 입고 있다. 그 그늘 아래서 아무 생각 없이 무심을 익히고 책도 읽으며, 잎 사이로 지나가는 살랑거리는 바람소리도 듣고, 은은히 숨결에 스며드는 꽃향기도 듣는다.
후박나무의 덕을 느끼며, 무엇을 생각하기보다는 무심을 배우고 속뜰이 청정해지는 시간을 보냅니다. 자연을 깊이 느끼며, 무심을 익히고, 책도 읽으며, 잎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소리도 듣습니다. 바람을 타고 스며드는 꽃향기도 가만히 듣는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나무 그늘에서 좌선하시는 스님의 살아있는 감각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 향기를 들으려는 소중한 마음
바람을 타고 은은히 숨결에 스며드는 꽃향기를 듣습니다. 법정스님은 꽃의 향기는 듣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코로 냄새를 맡는 것이 아니라, 향기를 듣는다는 공감각적인 오묘한 표현에서 꽃에 대한 스님의 깊은 애정을 알 수 있습니다.
꽃향기는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듣는다고 하는 옛 표현이 훨씬 운치 있고 적절하다. 꽃에다 코를 대고 씽씽 맡는 것은 짐승스런 몸짓이며, 꽃에 대해서 결례가 될 것이다. 내 문법대로라면 냄새는 맡고 향기는 듣는다. 바람결에 은은히 묻어오는 그 향기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아마도 향기를 들을 수 있다는 경지는, 꽃의 아름다음을 보고 꽃의 마음이 묻어 나오는 향기까지도 소중히 느낀다는 의미일지 모르겠습니다. 뜰에 핀 작은 꽃을 보면서도 그 꽃이 머금은 향기를 짐작하고 들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배워봅니다.
법정스님은 고개를 들어 후박나무 잎 사이로 구름을 보고 새들의 맑은 목청도 듣습니다. 눈을 감고 꾀꼬리, 밀화부리, 찌르레기, 호반새 등의 소리를 유심이 들으며 자연을 느꼈습니다. 눈감고 좌정한 채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자연을 구성하는 모든 존재들이 고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무소유의 정신과 사람의 덕.
법정스님이 직접 심은 15년 전 묘목은 자라서 시원하고 향기로운 그늘을 드리웠습니다. 큰 나무가 되어 자신의 그늘을 드리워 스님의 보살핌에 보답하고 세상의 한 부분을 이롭게 만든 것입니다. 이렇게 자연은 한결같이 신의를 지킵니다.
나무의 그늘에 견줄 때 우리들 사람의 그늘은 얼마나 엷고 빈약한가. 사람의 그늘은 덕인데, 눈앞의 사소한 이해타산에 걸려 덕의 그늘을 필칠 줄 모른다.
스님은 나무 아래에서 나무의 덕에 감사하며, 사람도 이와 같은 덕을 지녀야 함을 말했습니다. 이러한 덕을 갖기 위해선 자신의 그릇보다 큰 욕심을 덜어내는 무심한 무소유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멀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가 필요할 때 하나만 가질 줄 알고 불필요한 것에 욕심을 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갈 때, 사람은 사물에 얽매여 노예가 되지 않고, 홀가분하고 충만한 정신을 소유한 풍요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의 정신으로 아름다운 청빈함을 갖추고,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게서 배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후박나무가 만든 그늘처럼 사람도 사람의 그늘인 덕을 세상에 펼치기를 바랐습니다. 어떤 집착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는 어지럽고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자신다운 삶을 지혜롭게 적극적으로 살아나가기를 바랐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 읽을 때마다 깊은 감명을 받게 되는 법정스님의 글을 읽어보시길 권해봅니다. 맑고 향기로운 마음에 감화되다 보면, 자신의 속뜰이 정화되고 자신다운 생활을 굳건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